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안드레 도슨 (문단 편집) ===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 [[파일:external/41.media.tumblr.com/tumblr_nsienypP141uckof9o1_400.jpg]] 1975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는 역대 최악으로 악명이 높다. 이유는 1라운드 지명자 25명 중에서 명예의 전당 입성자는커녕, 단 한 명의 올스타도 배출되지 않았던 것.[* 그나마 1라운드 이후에는 이 항목의 주인공 안드레 도슨을 포함해 통산 478세이브에 빛나는 리 스미스(2라운드 28번), 1981년 AL 타격왕 카니 랜스포드(3라운드 49번),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역사상 최고의 2루수로 꼽히는 루 휘태커(5라운드 99번) 등 거물급 선수들이 몇 명 나오긴 했다.] 이 해에 드래프트된 선수 중에서 가장 빛난 선수는 이 글의 주인공인 안드레 도슨이었는데, 그 도슨의 지명 순위는 겨우 12라운드 250번(...)이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째로 고교 시절 [[미식축구]]와 [[야구]]를 병행하던 도슨은 미식축구 경기에서 무릎을 크게 다치게 되었다. 이 때문에 평가가 박해졌다. 둘째로는 그가 진학한 대학교가 야구에 관해서는 전혀 명문이 아닌 플로리다 농공업 대학(Florida Agricultural and Mechanical University)이었다는 점.[* 약칭 Florida A&M으로 역사적 [[흑인대학]](HBCU)이다. 이 대학 출신의 메이저리거는 총 4명으로 도슨을 빼고 가장 유명한 사람이 [[마퀴스 그리솜]]. 공교롭게도 도슨처럼 그리솜도 몬트리올의 지명을 받게 된다.][* 근데 이 대학, 메이저리거 수는 비록 4명 뿐이어도 그 한명 한명이 꽤 네임밸류가 크다. 도슨이야 명예의 전당 헌액 멤버이니 둘째치고, 그리솜도 도슨보단 못하더라도 나름 호타준족형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나머지 두 명은 각각 [[https://www.baseball-reference.com/players/c/colemvi01.shtml|빈스 콜맨]]과 [[https://www.baseball-reference.com/players/m/mcraeha01.shtml|할 맥레이]]인데, 콜맨은 1985년 신인왕 출신으로 '''한 시즌 100도루'''라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3시즌 연속 달성했고, 맥레이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지명타자로서 타선을 이끌며 1982년에 타점왕과 실버슬러거를 수상하는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타자들이다. 이 4명의 bWAR을 합치면 자그만치 134.8에 달한다. 그 중 도슨의 지분이 절반에 가깝긴 하지만...] 덕분에 고작 12라운드에 몬트리올에 지명받아 입성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평가는 모든 구단 스카우트들의 완벽한 오판이었고, 도슨은 일찍부터 마이너리그를 평정하면서 1976년 확장 로스터 때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그리고 주전으로 출장한 첫 해인 1977년 0.282, 19홈런, 67타점, 21도루의 기록을 내며 신인왕에 올랐다. 그 뒤로 몬트리올을 떠나는 1986년까지 매년 꾸준한 활약을 선보이면서 몬트리올의 중견수 자리를 책임졌다. 몬트리올 시절 총 5회의 20홈런-20도루를 달성했고, 1983년까지 매년 20도루 이상을 기록하면서 빠른 발을 자랑했다. 빠른 발을 이용한 넓은 수비 범위를 활용해서 6년 연속 [[골드 글러브]]에 선정될 정도로 수비력도 인정받았다. 몬트리올은 그가 있을 때인 1981년에 팀 역사상 유일한 PO 진출에 성공하는데, 도슨은 1981년과 1983년 두 차례 MVP 2위에 선정되는 등, 몬트리올의 간판으로 맹활약했다. 그러나 몬트리올의 홈구장인 '''[[스타드 올랭피크 드 몽레알|스타드 올랭피크]]'''(Stade Olympique de Montreal)는 몬트리올의 추운 기후 때문에 인조잔디가 깔린 구장이었고, 인조잔디가 깔린 구장에서 도루하고, 수비를 위해 실컷 뛰어다닌 대가는 그렇지 않아도 고교 시절 다쳤던 무릎의 악화였다. 결국 무릎 부상으로 인해 주력은 급격히 감소[* 이는 2002년 39-40을 정점으로 주력이 급격히 악화된 [[블라디미르 게레로|게선생]]의 사례에서도 나타난다.]했고, 선수 자신도 잔부상에 시달리면서 마침내 FA 자격을 취득하는 1986 시즌 후, 무조건 천연잔디가 있는 구장으로 뛰기를 희망하며 사실상 엑스포스와 결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